한국 여행객에 문턱 낮춘 몽골 노마딕서 유목민 체험
파란 바탕에 흰 구름이 뭉게뭉게 흘러간다. 녹회색 언덕이 병풍처럼 펼쳐진 초원에선 말과 야크와 쌍봉낙타가 조용히 풀을 뜯는다. “탁, 탁, 탁….” 양털을 곱게 다듬는 방망이질 소리가 초원의 적막을 깬다.
지난 5월 30일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서쪽으로 60㎞ 떨어진 유목민 체험 마을 ‘몽골 노마딕’. 전통 천막 ‘게르’의 아침 식탁엔 주전부리가 한상 가득 펼쳐졌다.
몽골식 요구르트 ‘타라크’와 전통술 ‘네리멜알히’, 전통차 ‘수테차’와 함께 도넛처럼 바삭하고 고소한 밀가루 과자 ‘버르츠크’가 곁들여졌다.
역사상 최대의 제국을 건설했던 칭기즈칸의 후예들도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 여파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세계 각국이 하늘길을 차단하고 여행객의 발이 묶이면서 2년 가까이 초원은 정적이 감돌았다. 그 침묵이 걷혔다. 코로나 상황을 안정적으로 통제했다는 자신감에 힘입어 외국 관광객들에게 다시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특히 한국 여행객들에게는 6월 1일부터 내후년 말까지 비자와 자가 격리 없이 최대 90일까지 머물 수 있도록 문턱을 확 낮췄다. 전체 외국인 관광객(50만명)의 5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많았던 한국 여행객에 대한 특별 대우다.
울란바토르에서 차로 50분이면 닿을 수 있는 몽골 노마딕에선 다양한 유목민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이날은 본격적인 손님맞이에 앞서 울란바토르에서 초등학생이 단체로 체험 학습을 오는 날. 몽골인들은 걸음을 떼자마자 말을 타고 초원을 누빈다더니, 그 또한 옛말이다. 야크와 말과 낙타를 탄 유목민들이 일렬로 초원을 행진할 때, 컵에 따끈한 수테차를 따라줄 때 아이들은 신기함에 두눈을 깜박이며 스마트폰을 갖다댔다.
꼬마 손님들 앞에서 유목민들이 마두금 연주에 맞춰 그 옛날 선조들의 숨결이 서린 알타이 산맥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른다. 입은 벌렸으되 소리는 사람의 것이 아니다. 초원을 떠도는 만물의 혼이 빙의된 듯 거칠고 명징한 떨림음이 신경을 가볍게 전율시킨다.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을 정도로 독창성을 인정받은 몽골인들의 ‘후미’ 창법. 한 명의 가창자가 지속적으로 목구멍에서 저음을 내는 동시에 맑은 고음을 낸다. 유목민족의 선조가 먼 옛날 새들로부터 배운 창법이라고 전해진다.
하늘길이 닫힌 지난 2년 동안 몽골엔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우선 항공 관문이 달라졌다. 작년 7월 울란바토르에서 남쪽으로 50여 ㎞ 지점에 새로 공항이 문을 열었다. 좁고 북적이던 옛 공항은 임무를 마치고 퇴역했다. 새 공항 터미널은 인천공항을 축소해서 옮겨다놓은 듯 산뜻하고 널찍하다. 일본 정부와의 국제 협력 사업으로 건립돼 일본 전문가들과 합작 형태로 운영한다. 옛날 공항과 다른 완전히 새로운 부지에 지었지만, 이름은 칭기즈칸 국제공항 그대로다.
이르면 올여름 개관을 목표로 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울란바토르 국립 칭기즈칸 박물관에서는 전시물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울란바토르 시내 한복판인 수흐바타르 광장 옆에는 국립역사박물관과 자연사박물관이 있었다. 이 중 자연사박물관을 레닌박물관 자리로 옮기고 그 자리에 6층짜리 최신식 칭기즈칸 박물관을 새로 지었다. 1921~1990년 사회주의 공화국 시절 이념의 구심점이 1000년 제왕에게 자리를 내준 셈이다.
몽골제국의 황금기를 구현한 각 층 전시장은 모두 에스컬레이터로 연결된다. 하이라이트는 건물 최고층에 있다. 지름 25m, 높이 15m짜리 거대한 게르가 그 안에 들어선다.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쩌렁쩌렁 울릴 만큼 강력한 진동음을 내도록 설계된 이 게르 안에는 칭기즈칸의 거대 동상이 들어선다. 제왕의 궁전인 셈이다.
울란바토르에서 동쪽으로 50여 ㎞ 떨어진 천진벌덕에는 2008년 높이 40m 세계 최대 기마상으로 알려진 칭기즈칸 기마동상이 있다. 울란바토르 도심 복판의 광장도 공화국 수립 영웅의 이름을 딴 수흐바타르 광장이지만, 칭기즈칸·오고타이칸·쿠빌라이칸의 거대 좌상이 자리 잡고 있어 ‘칭기즈칸 광장’으로 더 유명하다. 오는 7월 10~13일에는 울란바토르를 비롯해 이 나라 전역에서 민속 축제 ‘나담’이 펼쳐진다. 코로나로 한 해 미뤄진 만큼 사실상 이번 축제가 근대국가 건국 100주년 축제다.
◇ '사랑의 불시착’ 촬영한 기차역
몽골 여행의 시작이자 끝인 수도 울란바토르의 가로축이 칭기즈칸이라면 세로축은 ‘한류’다. 솔롱고스(몽골어로 한국을 부르는 말·무지개가 뜨는 나라라는 뜻)라는 국호에서 느껴지는 각별한 한국 사랑이 거리 곳곳에서 느껴진다. 빠른 속도로 현대화되면서 곳곳에 24시간 편의점이 들어섰는데, 한국 편의점 브랜드 ‘CU’와 ‘GS25′의 치열한 양강전이 점입가경이다.
나란히 서 있거나 마주 보고 있는 건물에 각각 GS25와 CU 간판이 붙어 있는 것은 물론, 한 건물에 두 가게가 같이 있는 경우도 있다. 이마트에는 종일 쇼핑객들의 차량이 몰려든다. 한국의 힙한 곳마다 이탈리아·프랑스 식당이 들어서듯 목 좋은 곳마다 간판도 제각각인 한국 식당이 성업 중이다.
최근에는 한류 드라마 촬영 명소도 생겼다. 울란바토르 기차역 승강장이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주인공 리정혁(현빈)과 윤세리(손예진)의 기차 장면이 촬영됐던 극중 평양역이 울란바토르 기차역이다. 사회주의 공화국 시절이던 1949년 건립한 역사(驛舍)가 그대로 남아 있다. 승강장에서는 남동부 지역의 철도 교통 요충지이자 사막 여행의 거점인 사인샨드 등으로 출발하는 횡단열차가 출발한다. 기차 여행과 유목민 주거지 체험을 두루 할 수 있는 관광 상품이 많다.
여행의 추억을 남기고 아쉬움을 달랠 만한 것으로 쇼핑만 한 게 없다. 유목민의 나라에서 쇼핑이라고? 몽골은 세계 패션계의 ‘언더도그’로 떠올랐다. 사막과 거친 초원에서 강인하고 자유롭게 자란 염소털로 만든 ‘몽골 캐시미어’는 여행객들의 ‘필수템’으로 자리 잡았다. 1981년 설립돼 울란바토르 도심에 대형 매장을 둔 패션 브랜드 ‘고비’를 필두로 여러 패션 브랜드가 품질 좋고 가격 착한 의류들을 내놓고 있다. (출처, 조선일보 아무튼,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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